1. 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던 날이었다, 전날 과음 탓인지 몸이 묘하게 무겁고 속이 허했다, 그런 날엔 이상하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북엇국이었다, 냄비 속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던 그 익숙한 냄새, 어릴 적 주말 아침마다 들리던 주전자 소리와 함께 떠오르던 풍경, 엄마가 잠결에 말하던 “속이 풀릴 거야”라는 한마디까지, 그 기억들이 머릿속을 천천히 스쳐갔다, 결국 나는 냉장고를 열어 말린 북어를 꺼냈다, 그 순간부터 이미 마음은 반쯤 엄마 곁으로 가 있었다.

2. 북어를 물에 살짝 불리며 조심스럽게 찢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어릴 때와 똑같았다, 마른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결이 풀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함께 볶으니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고소한 향 사이로 약간의 짠내가 섞여 마음을 간질였다, 북어가 노릇하게 볶아질 때쯤 물을 붓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눈앞이 순간적으로 뿌옇게 변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김 사이로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안에 엄마의 주방이 겹쳐 보였다.
3. 국이 끓기 시작하자 부엌 안은 금세 따뜻해졌다, 계란을 풀어 넣고 젓가락으로 천천히 저어주니 하얀 실처럼 풀린 노른자가 국물에 섞였다,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한 번 더 끓였다, 그 사이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김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리움의 냄새였다, 숟가락으로 한 모금 떠서 맛을 보니 아직 싱거웠다, 소금 한 꼬집을 더 넣고 다시 저었다, 그 작은 동작 하나에도 이상하게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셨던가” 하고 중얼거렸다.
4. 국이 완성될 즈음엔 냄비 가장자리에 작은 거품이 생겼다, 그건 엄마가 늘 걷어내던 부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어 그 거품을 떼어냈다, 그렇게 하면서 괜히 미소가 났다, 어릴 땐 왜 저걸 굳이 걷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그 세심함이 음식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걸 안다, 엄마의 국은 늘 깨끗했다, 재료는 단순했지만 맛은 깊었다, 나는 그 이유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했다, 정성이라는 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숨어 있는 것이라는 걸.
5. 그릇에 담은 북엇국은 김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하얗고 맑은 국물 속에서 북어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구수한 맛이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속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 그건 단순히 국물이 뜨거워서가 아니었다, 그 속엔 엄마의 손맛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맛은 여전히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한 모금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마음속의 허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움이 맛으로 풀린다는 말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6. 식탁에 혼자 앉아 국을 먹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부엌이 낯설지 않았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김이 피어오르는 모양, 그 모든 게 따뜻한 대화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엔 엄마가 건네던 국 한 그릇이 그저 아침식사였지만, 지금은 그게 마음의 위로라는 걸 안다, 국을 먹으며 괜히 “엄마 거랑 비슷하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웃음이 났다, 맛이 완벽하게 같을 순 없지만, 마음만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국을 다 먹을 무렵엔 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편해졌다.
7. 결국 북엇국을 끓인 그날은 단순한 요리의 하루가 아니었다, 그건 엄마를 그리워하던 마음이 향으로, 맛으로, 그리고 온기로 피어난 하루였다, 냄비 속에서 끓는 소리는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같았다, “천천히 먹어라, 너무 뜨겁다” 하시던 그 목소리, 그 말이 국물처럼 부드럽게 떠올랐다, 식탁 위에 남은 빈 그릇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엄마의 손맛이란 결국 기억의 온도라는 걸, 그리고 그 온도를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렇게 나는 오늘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또 한 번 북엇국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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