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이 깊어가고 시계바늘이 새벽 두 시를 가리킬 즈음, 이상하게 허기가 찾아왔다, 늦은 시간이라 그냥 잠들까 했지만 배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불을 켜고 부엌으로 향했다, 조용한 집 안에 불빛이 켜지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살짝 들떴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별다른 건 없고, 선반 위에 있던 라면 한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망설임이 사라졌다, 새벽에 끓여 먹는 라면이야말로 금지된 행복 같았다, 그 한 그릇이 주는 위로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2. 냄비에 물을 붓는 소리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돗물이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묘하게 리듬감이 있었다, 물이 끓기 전까지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어쩐지 설레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스프 봉지를 뜯어 넣었다, 붉은 가루가 물 위에 흩어지며 순식간에 냄비 속이 붉게 물들었다, 젓가락으로 저을 때마다 고소한 냄새와 매운 향이 퍼졌다, 새벽의 공기 속에 그 냄새가 스며드는 순간, 어둠 속에서도 온기가 돌았다, 라면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 시간에 나만의 작은 불빛이었다.
3. 면이 풀리기 시작하자 냄비 속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냄비 옆에서 계란을 하나 깨 넣고 젓가락으로 살짝 흩었다, 노른자가 반쯤 퍼지고 흰자가 부드럽게 익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위로처럼 느껴졌다, 파를 조금 썰어 넣자 향이 한층 살아났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오직 끓는 냄비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그 한가운데에서 나 혼자 깨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이상하게 든든했다, 그렇게 라면은 천천히 완성되어 갔다.
4. 그릇에 라면을 옮기고 젓가락으로 면을 한 번 풀어주자 김이 피어올랐다,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국물의 색이 더 진하게 보였다, 한입 먹자마자 매운 국물이 입안에 퍼지고 혀끝이 살짝 얼얼해졌다, 하지만 곧이어 밀려오는 고소함이 그 매운맛을 감쌌다, 단순한 맛인데도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게 늘 신기했다, 그건 어쩌면 라면이 아니라, 새벽이라는 시간대가 만들어주는 특별한 맛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요함 속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세상의 모든 고민이 잠시 멈춘 듯했다.
5.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젓가락 끝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땀이 이마에 맺혔고, 매운 국물이 입가를 타고 흘렀지만 상관없었다, 그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동안 머릿속은 이상할 만큼 비워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국물의 온도만이 남았다, 라면이 식어가면서 국물의 맛도 변했지만 그조차도 좋았다,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을 마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맛은 언제 먹어도 똑같네”, 새벽의 적막 속에서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6.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도 라면 냄새는 부엌에 오래 남아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바람을 들였지만, 그 냄새마저 좋았다, 새벽의 공기와 섞인 라면 향은 왠지 사람 냄새처럼 느껴졌다, 국물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서야 허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배가 부른 것보다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새벽 라면을 죄책감이라고 부르지만, 내게 그건 조용한 위로였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끓여 먹은 그 따뜻한 한 그릇,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텨낼 힘이 생겼다, 라면의 맛보다 그 시간의 고요함이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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